♤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으면 ♤ 옛날 어는 상인이 시장 바닥에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지혜, 사람을 얻고 지위를 얻고 돈을 얻고 출세하는 지혜를 판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들은 그 지혜를 사기 위해 몰러들었고 상인은 모인 사람들로부터 선불을 다 받았다. 그리고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말조심 해!" 주자가 남긴 교훈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험담하는 사람은 경망한 자요, 이와 더불어 맞장구를 치는 사람은 비겁한 자요, 이를 듣고 전하는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다." 야고보는 혀는 곧 불이라 이 불이 생의 바퀴를 불사르게 된다고 했다(약 3:6). 잘못된 말이 도화선이 되어 나를 사르고 너를 사르고 가정과 공동체를 소멸시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말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선한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먼저 선해진다. 반면에 악한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먼저 악해진다. 험악한 말을 하면 내 마음에 먼저 격분이 일어난다. 더러운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더러워진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 말이 신앙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말이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 그 말이 기도가 되고 성취가 된다. 그리스도인에겐 그리스도인다운 말이 있다. 마가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들이 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4절). 예수님은 귀가 없는 나무에게 말씀하시고 바람과 태풍에게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말은 말 자체에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3절). 무화과의 때가 아닌데 열매 없다고 이 나무를 저주하신다. 열매의 때가 아니기에 열매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무화과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왜 저주를 하셨을까? 뭔가 뜻이 있었었다.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14절). 말을 하면 든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구태여 이 터무니 없는 말을 제자들에게 듣는다고 기록했을까? 말에도 힘이 있지만 듣는 것 또한 힘이 된다. 어떤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오후에 그 길로 돌아올 때 보니 무화과나무가 뿌리부터 말라 있었다. 베드로가 아침에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1절) 라고 말한다. 이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일까? "열매 없는 나무는 저주를 받듯 열매 없는 인생은 저주를 받는다." 그러나 결론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2~23절). 제자들에게 말의 권세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일으키신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마가의 해석이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도 예수께서 믿음의 권세를 가르치기 위해 이 사건을 일으키신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실감나는 예배를 드리는 당신이길 ...... 柳溪 권성길 作 *옮긴 글*나그네정* |
출처 : 소담 엔카
글쓴이 : 나그네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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