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잃는 글

[스크랩] 소월 탄생 110주년 기념, 문학콘서트 무대에 이수정시인님과 오르다!!

청산노을 2012. 6. 5. 11:40








소월 탄생 110주년 기념
'소월을 노래하다' 문학콘서트 무대에 오르다


2012년 6월1일 금요일 오후7시-9시 
성동문화회관 소월 아트홀에서 있었다.


민족시인, 국민시인,전통민요시인으로 불리는 한국 현대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층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높은 칭송을 받고 있는
김소월 선생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문학콘서트에 
이수정시인님과 나란히 이렇듯 뜻 깊은 무대에 올라 
옛향수의 악기 하모니카 소리를 배경음으로 들려 드리게 된 
영광된 그날의 감흥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출렁인다.

담아 온 동영상을 보면서 
이수정시인님의 청에 의해 맞춘 호흡은 하나로 잘 맺음되어 
아름다운 그림 한 편을 남기게 된 멋지고 아름다운 무대였음을 .
불러주신 이수정시인님과 행사관계자님께 먼저 감사드리며, 
그날의 공연모습들을 오픈합니다.


소월 탄생 110주년 기념 문학콘서트 팜플렛


팜플렛 뒷면 프로그램


소월 시 가곡 연주(Intro)
진달래꽃 산유화-소월아트심포니오케스트라 현악8중주


소월 기념사업 경과 보고중..성동문화원 국장 김천우


문학 비평가 권영민 교수
강연내용:소월의 삶과 시 그리고 최초의 근대문화재 


시집'진달래 꽃'의 문화재 등록 과정의 이야기


미국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문화과 
소월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현재 서강대학교 한국학부 교수인
웨인 프레머리박사..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유안진 초청시인 시낭송 중


김소월의 '접동새', '사랑 그 이상의 사랑으로'




"맨발"의 문태준 시인 시낭송 중..


'풀따기/김소월'


'그맘때에는/문태준'


소월의 외증손녀 소프라노 김상은 초대공연
가곡: '진달래 꽃'


'엄마야 누나야'


소월증손녀 김상은씨와 문학박사 권영민교수-잠시 질문시간


관객을 무대로 초대되어 오른 
이수정시인님과 백뮤직 하모연주차 오른 찬란한 빛
이수정시인은 '수필가'이자 작사가 그리고 '낭송인'이기도 합니다. 


배경음악:옛노래 백난아 '찔레꽃'


미랑 이수정시인의 낭송시 

길 /김   소   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십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 郭山)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 잘 가는가 ?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시낭송-왕십리/이경선


성악가 바리톤 우주호 소월시 가곡 공연(Ending)


'초혼', '못잊어'


좌측부터..김영희, 이수정, 이경선


유안진시인님과 기념촬영..
하모니카에 첫발을 딛을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를 해 주신 
좌측에서 두번째 하모동우회 이경자님도 함께..


김소월시 '왕십리'를 멋지게 낭송해 주신 이경선 낭송가 우측 끝..



미랑 이수정..시인 낭송인 수필가

소월110주년 문학콘서트의 이렇듯 뜻 깊은 무대에 불러주신 
미랑 이수정시인님의 모습을 곱게 올리며, 
자작시 한편 소개합니다.

한마리 학이 되어/ 이수정

이젠 다시
함께는 할 수 없을 것을
그리움이 강물처럼 일렁일 것을

기다림으로 길게 뻗은 외다리로
갈망의 가녀린 목을 빼고
물끄러미 하늘만 바라보는 
나는 다만 
한 마리 학이 되어

시린 바람만 몰아치는
그대 떠난 빈자리 곁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홀로 서서
고도 한필 고이 접어
하얀 날개 밑에 감추어 본다.

저무는 강 물결따라 흘러
이미 저만치 풍경이 돼 버린 그대 품
물안개 깊이 깔리는 우수깊이
눈물은 소리없는 적막으로 쌓이고
돌아갈 줄 모르는 나는 
외로 선 한마리 학

어쩌랴 어쩌랴 노을 저리 붉은데
땅거미 자꾸 이리 밀려 밀려 오는데




감사합니다.





소월(본명 김정식,1902-1934)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으며 오산학교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했다.
1922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동경상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1920년 3월 오산학교 재학당시 스승이던 김억(金億)의 도움으로
창조5호에 작품 '낭만의 봄','야(夜)의 우적雨適'등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후 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초창기 시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김소월은 근대시의 형성과정에서 한국적 서정시를 확립한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서구시의 형식을 번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근대시에 새로운 독자적인 형식과 기법을 발견하였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그의 시는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균제된 시적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그 자체의 형식을 통해 서정시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출처:주제강연
권영민(단국대학교 석좌교수 문학사상사 주간)
김소월의 시, 그리고 시집 '진달래꽃'에서 일부 발췌


편집및제작: 찬란한 빛 김영희


김소월 시 김성태 곡 소프라노 배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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